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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덕규 (사)한국교류분석협회장을 떠나보내며
TA人 전문가 칼럼 ( 2019년 5월호 )

이영호
인제대지부장
인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만히 조용히 바람 같은 인생 속에 사람의 인연을 생각하며 가슴 가득 안타까움과 황망함의 여진 속에 정 많고 따뜻하셨던 고 정덕규 협회장님을 애도해 봅니다.

  제가 보는 협회장님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고 한편의 드라마 같았습니다.

  경북 영덕의 영해중학교에서 발군의 웅변실력으로 국무총리 상을 받은 협회장님은 대구로 올라와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대학원 산업복지학과에서 우리나라 교류분석의 개척자이자 선구자이셨던 고 우재현 교수의 제자로 공부하며, 정치지망생들과 웅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학원을 운영하며 사회복지학과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5년 당시 245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상인동 지하철가스폭발사고는 협회장님 삶에 있어서 큰 변곡점이었습니다. 가스폭발 사고로 영남중학교에 다니던 아들(당시 14)을 잃고 망연자실해 하며 협회장님은 당시 동문들의 조문에 감사를 표하며 아들이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밤새 공부하던 나에게 소고기를 사주기 위해 20일째 신문을 돌리고 있었다.”다음날 신문지국장이 20일간 일했던 급여를 봉투에 담아 '꼭 소고기 사드셔라'고 전해 가슴이 더 찢어지는 것 같다고 울먹이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이후 4.28 유족회장으로서 사고 수습을 하면서 대구시 행정처리와 사회의 부조리를 겪으며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불리던 당시 수성구 지역유지를 꺾고 1995년 대구시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며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이후 2년 뒤 1997년 대구시 사회복지행정 관련 박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후 간간히 소식만 전해 들으며 지내오다 2002년 갑작스런 우재현 교수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잠깐 뵈었고, 2002년 한국교류분석협회장으로 취임하여 이후 혼란스러운 협회를 추스르며 협회 재건에 힘써오셨습니다. 2005년 당시 김종호 협회사무총장을 만나 협회 가입 권유로 연을 맺으며 협회장님과 실제적인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사회활동을 하시는 가운데 저의 가슴에 지금도 남아 있는 소중한 기억이 있습니다. ()중앙자활센터 원장으로서 재직하면서 협회 발전을 위해 그리고 교류분석 철학과 이론을 활용한 자활인의 자활의식 고취 즉 물질적인 지원과 병행하여 정신적 자활을 강조하시면서 자활참여자들을 위한 TA집단프로그램을 저에게 기획해 보라고 하며, 센터 직원들을 독려하며 추진력 있게 진행하여 집단프로그램을 전국에 보급하고자 노력하셨고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오자 좋아하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후 협회 운영방향에 있어서 이견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협회장님과 결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작년에 자활TA 책을 들고 찾아가서 고인의 모습을 보며 허심탄회한 가슴 속 이야기를 하려다 못하고 이렇듯 갑자기 허망하게 보내게 내어 참으로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입니다.

  협회장님은 여러 우여곡절로 점철된 지류에 있었음에도 줄곧 교류분석의 본류로 돌아와 교류분석을 사랑하고 이론 보급에 나머지 삶을 바치셨습니다. 이제 고 정덕규 협회장님은 천국에 가 계시지만 당신의 TA사랑과 족적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며 늘 자주 말씀하셨던 ‘TA가 우리 사회에 부정성을 걷어내고 긍정성을 확산시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는 말씀 길이 간직할 것 입니다.

  지금 참으로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협회장님은 경북 칠곡군 동명면 다부거문 151-75 실봉산 옆 현대공원묘원 양지바른 곳에 고이 잠드셨습니다. 협회장님께서 생명수 머금은 포근한 대지의 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찾으셨으리라 믿으며 평안의 기도를 드립니다.

   고 정덕규 협회장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록일자 :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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