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모르 파티 Amor fati
작 성 일 자 2020-11-01 작 성 자 한국교류분석상담학회

무한한 삶을 반복하는 영원회귀의 어느 세상에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뜨거운 사막 위를 끝도 없이 걸어가는 외로운 낙타의 세상에 어느 날 사자가 나타났다. 그곳이 어디건 자신의 왕국으로 만드는 사자에게 낙타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사자의 명령을 사랑하겠노라 했다. 그렇게 낙타는 자유를 담보로 사자의 세상에서 살게 된다. 자유의 쟁취자인 사자는 공경심이 두터운 낙타와 함께 자신과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언제나 사자의 곁을 지키는 낙타는 두터운 굳은살이 베도록 사자에게 무릎을 꿇으며 주인의 자존심을 영광되게 하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견뎌야 할 고통’으로 만들어가며 그저 묵묵히.



 



어느 날 낙타와 사자 앞에 ‘황금빛 비늘의 용’이 나타났다. 사자가 자신을 지배하려던 모든 주인들을 물리친 후 마지막으로 대적한 그는 바로 신이었던 것이다. 용은 사자에게 “너는 나의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는 굶주림과 죽음뿐일 것이다”.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따르며 살아온 사자는 말했다. “나는 자유를 원할 뿐이다. 갈증과 먹이에 굴복해 안락한 자들처럼 되지 않겠다. 외롭고 굶주리더라도 나는 자유 할 것이다.” 사자는 죽음의 앞에서 번쩍이는 이를 드러내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포효를 하였다. 노한 용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생명을 거두려 하였던 그때,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가장 무거운 운명을 지고 영원회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서 저 아이는 어찌 저토록 가볍고도 초월적일 수 있는가.’ 사자의 적수였던 용은 자신이 아이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았다. 어린아이는 낙타와 달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욕구를 알았고, 다른 이의 욕구를 욕구하는 사자와도 달랐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운명을 웃음으로 ‘극복’하는 진정한 ‘자기 세계’를 살아가는 아이를 니체는 긍정이라는 축복으로 이야기했다.



 



“어떻게 해서 정신은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F. W. Nietzsche)의 정신의 변신



 



자신의 삶에 못된 고문을 가하는 낙타. 이 착한 동물의 운명은 희생 그 자체라 부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기 삶을 고된 것으로 만드는 소위 ‘곤경에 처하기’의 게임을 일삼는 책임감 있는 일중독자(강박-신경증적 성격적응)와 같다. 부모 자아에 의해 어른 자아가 오염된 낙타는 아마 어린 시절 ‘게으른 손과 마음은 악마가 주는 것(Devil's workshop)’이라는 각본 메시지를 듣고 자랐을 게 분명하다. 그의 어린이 자아가 잠시라도 삶의 재미를 맛보지 못하도록, 죄책감과 과도한 자기규제로 생명력을 잃은 채 도대체 언제 무거운 걸음을 멈추고 쉬어야 할지도 모르도록 말이다.



 



낙타처럼 삶을 사막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삶을 웃고 즐길 수 없었던 사자. 그는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에 내몰린 병사처럼 ‘할 수 있으면 날 잡아봐’ 게임을 하는 매력적 조작자(반사회성 성격적응)와 같다. 어린이 자아에 의해 어른 자아가 오염된 사자는 아마 어린 시절 그의 어미로부터 그저 홀로 방치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새끼 사자는 스스로 생존하기로 결단하고 유기에 대한 슬픔을 타인을 바보로 만들어 앙갚음을 하기 위한 에너지로 그의 멋진 갈기와 이빨을 사용하지만 영원히 자신을 충족시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채 말이다. 아마도 사자는 용에게서 자유를 찾아 왔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지 않았을까.



 



사자도 못한 일을 해낸 어린아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그 욕망을 위해 사자의 으르렁대는 전투대신 사막과 용에게도 웃음 짓고 삶을 재미있는 놀이터로 만드는 신성한 긍정의 정신. 그 정신은 무엇으로부터일까. 과연 어린아이는 영겁의 세월 동안 결핍과 위협, 상실과 좌절이 없었을까. 아마 삶의 고통 어느 끝자락에서 어느 날 결단하였을 것이다. 이젠 내 자신이 되어 지금 여기의 내 삶을 의욕하며 살아가겠다고.



 



우리 안에는 분명 어린아이가 있다. 낙타도 있고 사자도 있다. 우리 모두 왕자와 공주로 태어났음에도 낙타와 사자가 득실대는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서 Not OK의 인생태도와 인생각본을 재정의하며 각본결말을 향해 살아왔지만, 이제 이 모든 것을 안 우리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신하고 있을 것이다.



 



사자여! 이제는 진실한 만남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려라.



낙타여! 이제 그만 일을 멈추고 긴장을 풀어 나와 함께 춤추고 웃어보자.



운명의 재창조. 그것이 바로 운명에 대한 사랑 ‘아모르 파티’



 



나에게 아이가 되어 살아가는 법을 알게 해준 뜨락에 감사하며 10월의 어느 날 ■



 



* 아모르 파티 - 니체의 운명에 대한 사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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