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강의를 통해 에릭 번의 교류분석 이론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에게 교류분석 이론은 그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론에 대해서 필기하고 암기하는 데에만 치중하였고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한 학기가 끝나자 교류분석 이론은 금세 나의 전의식 속으로 사라졌다.
본격적으로 교류분석 이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고, 나 자신의 변화를 설계해보기 시작했던 것은 천안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의 실습과 월례회를 통해서였다. 실습일정 중 교류분석 이론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이론교육뿐 아니라, OK그램 검사를 시행하고, 결과를 해석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나는 학교에서 해보았던 OK그램의 검사 결과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You are OK, I'm not OK'가 나 자신의 일관성 있는 인생태도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교류분석 이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You are OK, I'm not OK' 의 인생태도를 가지고 있던 나는, 누군가가 '괜찮아 '라고 물어보면, 습관처럼 '나는 괜찮아'라고 답하곤 하였고 누군가가 ‘나 괜찮을까 ’라고 물어보면 ‘괜찮아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누구든 실수를 하며 살아 세상에 결함 없이 완벽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이야기하며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끊임없이 보냈다.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포함한 소중한 지인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실수는 어떤 것이든 용납할 수 있었다. 반면에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스트로크는 그저 예의상 하는 이야기로 생각하여 공기 중으로 흘려버리고는 했다.
남들에게 연신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주문처럼 '괜찮지 않아', '왜 이렇게 못난 거야 ', '더 잘할 수는 없었어 '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는 항상 스스로에게 뱉은 무분별한 비난과 질책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나에게 큰 변화는 없었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나를 채찍질했기 때문에 겨우 대학교도 입학할 수 있었고 타인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곁에 좋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라 자위하였다. 하지만, ‘적극적인 스트로크로 자존감 확인하기’라는 제목의 월례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나를 위한 변화 의지가 생기게 되었다. ‘왜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나 자신에게는 징벌적이며 엄격한가’ 그리고 ‘왜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디스카운트하는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실습지도자님이자 월례회를 담당하고 계시는 지요석 지부장님께서는 월례회를 진행하기에 앞서, 최근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받은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마음속에 잘 담아두지 않는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빠른 시간 내에 할 수 없었다. 특히 부모님에게 받은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스트로크에 대한 기억은 더더욱 떠올리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에게는 긍정적인 스트로크보다는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받은 기억이 더욱 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아기 때, 부모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 어린이집 선생님께 받은 사소한 칭찬도 집에 와서 자랑하였고, 스스로 병뚜껑을 따서 물을 마시는 행동을 보여주면,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님 앞에서 병뚜껑을 다시 닫고 따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반복한 적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칭찬을 받으려고 친구가 선생님께 받은 칭찬을 내가 받은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칭찬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병뚜껑을 반복적으로 따는 그러한 억지스러운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이러한 스트로크는 초등학교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학교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선생님께 전화를 받은 부모님은 잘못을 할 때마다 때리라고 이야기하였고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모든 잘못을 내게 떠넘긴 사람은 가해자가 아닌 부모님이었다. 잘못은 엄격하게 질타받았지만, 칭찬받을 행동은 내게 모두 당연한 것이었다.
유아기 때부터 현재까지 익숙하게 받은 유형의 스트로크는 부정적인 스트로크였기 때문에 나는 칭찬보다 비판이 더 받아들이기가 편했고, 어떨 때는 그러한 유형의 스트로크가 긍정적인 스트로크보다 친근함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정적인 스트로크만을 추구하고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받으면 디스카운트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후, 나는 나를 위한 변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타인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나 자신에게도 보내는 것이다. 왜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내게 관대하지 못했을까. 이제는 스스로를 디스카운트하지 않고, 타인을 수용하는 만큼의 절반이라도 스스로를 수용해보기로 하였다. 그것이 우선이 되었을 때 두 번째 계획은 더욱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타인이 주는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정적인 스트로크에서 사랑을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고, 타인이 보내는 인정과 위로 속에서 편안함을 찾아보고 싶다. 예의상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위해 스트로크를 보내는 사람들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다짐을 이루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작성하고 수정하기까지도 습관처럼 나는 나 자신과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나는 변화하고 싶다. 나는 이미 변화되고 있으며 언젠간 더욱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내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