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이별을 합니다. 아가 때 젖꼭지와의 이별, 첫걸음마를 하면서 방바닥과 밀착 생활 이별, 유치원을 가면서 엄마와의 생이별, 학창시절 우정과 첫사랑과의 이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수없이 겪어야했던 우수한 성적과의 이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슴 시린 이별 …. 이 모든 이별 안에는 동일하게 겹치는 한 존재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의 모든 이별 안에는 ‘나’라는 존재가 항상 같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라는 존재와 이별을 한 적이 있을까요
교류분석에서 ‘나’는 자아상태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구성하고 표현되는 행동, 사고, 감정은 어느 하나의 특성으로 정의될 수 없고, 3개의 자아상태 중 어느 하나로 확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가사가 대변하듯이요. 상황에 따라서, 어떤 사람과 교류하느냐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드러내어지는 모습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나로 있게 하지 못하는 모습은 하나의 패턴으로 ‘나’와 함께 있어 왔습니다. 교류분석에서는 이를 그 사람의 ‘각본(Script)’에 의한 것이라고 봅니다. 나도 모르게 우리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아갑니다. 인생에서 손해를 보며 정작 헤어져야 할 못난 ‘나’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상담실에서 정작 헤어져야 하는 ‘나’와 헤어지지 못하고, 타인과 이별을 하고 상처받아 찾아오는 많은 내담자를 만납니다. 왜 사람들과 헤어지는지, 이런 상처가 왜 계속해서 반복되는지, 스스로가 작아지는 이유를 모른 채로 찾아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쭉 함께 하면서 그 사람을 깊이 알게 됩니다. 현재 아픔을 겪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이 사람에게 아픔이 되는지, 삶의 고난들을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왔는지,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유지해왔는지를요. 그리고 이해하게 됩니다. 왜 그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는지, 그때 얼마나 상처가 되고 두려웠을지를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헤어져야 할 ‘나’와 이별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율성(autonomy)’을 갖는 것입니다. 신체 감각을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순수한 지각(awareness)’, 자유롭게 반응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인 ‘자발성(spontaneity)’, 내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를 타인과 솔직하게 나누는 ‘친밀(intimacy)’이 모두 포함된 자율성은 어느 누구의 메시지도 명령도 아닌, 내가 원하고 바라는 지금-여기(here-now)를 사는 ‘나’입니다.
이 자율성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재결정(redecision)’입니다. 교류분석에서 재결정 치료는 어린 시절의 자신(child)를 재경험하고, 어린 시절의 상상(fantasy)과 결정(decision)을 현재 자신에 맞게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십이 넘도록 자신을 보여주고 깊은 관계를 맺는 걸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24시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남들이 국내여행이다 해외여행이다 쉬러 다니는 동안, 주말조차도 새벽 3시까지 일을 하며, 단 하루도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애인과도 여행을 다녀올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로 갑니다. 아직은 너무 어린 나이의 4살, 아버지는 암으로 방에 누워계십니다. 어머니는 어린 두 아들과 아픈 남편을 건사하느라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하느라 보기가 어렵습니다. 7살이 차이 나는 형은 친구들과 노느라 나와 놀아주지 않습니다. 떼를 써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놀아달라고 해도 안 되는 나는 ‘착한 아이’여야 합니다. 혼자 알아서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엄마가 덜 힘드니까요. 가족들, 친척들에게 나는 관심 밖의 사람입니다. 형만 찾고,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습니다. 나에게 허락되는 건 건담입니다. 천하무적에다가 내 마음대로 조립도 하고, 하루 종일 건담만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큰일을 끝내고 나면 자신에게 선물로 건담을 삽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조용한 방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건담을 만듭니다.
상담사는 조용히 그 사람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줍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조각들의 아버지 기억, 어린 시절 혼자 건담을 만들며 착한 아이로 지내야 했던 기억, 그 기억들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아이의 외로움을 읽어줍니다. 그때 ‘착한 아이’가 아닌 어린아이 그대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봐 주고 들어줍니다.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빈자리, 누군가가 있어 줘야 했던 시간에 엄마도 형도 없이 보내야 했던 무서운 시간들, 몸의 말들과 마음의 말들 속에 함께 있어 줍니다. 이제는 더 이상 4살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닌, 조용히 혼자 착하게 놀아야 하는 아이가 아님을. 쉬고 싶으면 쉬고, 다른 사람의 요청을 거절해도 ‘나쁜 아이’가 아니고,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하면 곁에 있을 사람이 있는 현재의 ‘나’임을 나누고, 자각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있어 줍니다. 그렇게 서서히 어린 시절 ‘나’와 이별을 합니다. 눈물이 잦아들고, 몸은 나른해지며, 얼굴에 편안함이 스며듭니다.
상담사는 내담자들이 헤어지러 가는 길의 안내자이자, 동반자로서 잠재력(potency)을 가지고 내담자의 어린 시절의 상상과 결정들, 삶에서의 아픔들을 견딜 수 있도록 허가(permission)와 보호(protection)을 해주어야 합니다. 내담자가 지금껏 함께 해 온 이별 해야 하는 나와 잘 헤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견뎌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항상 우리 자신은 어떤지 살펴봐야 하는 거 같습니다. 헤어져 본 적은 있는지, 반쪽짜리 이별만 한 건 아닌지, 재결합을 한 건 아닌지 말이지요.
내담자와 함께
또는 상담자이자 한 사람으로
오늘 하루, 묵은 관계의 어린 시절 ‘나’와 잘 헤어지러 가는 거 어떨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