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로 읽는 󰡔장자(莊子)󰡕
작 성 일 자 2023-04-03 작 성 자 김익재

TA에서 궁극적 변화의 목표는 ‘자율성(autonomy)’이다. 즉 각본에서 벗어나 ‘지금-여기’에 기초한 감정과 사고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자율성이란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다. 국어사전에는 ‘자기 스스로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성질이나 특성’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에릭 번은 ‘자각(自覺), 자율(自律), 친밀(親密) 세 가지 능력을 발휘하거나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 또한 개념을 정의하기에는 만만찮은 용어들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는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이 있다. ‘나[吾]는 나[我]를 장사지냈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나[我]’는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으로, 자기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TA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바로 ‘각본(脚本, script)’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가 자신을 장사지냈다는 말은 자신의 아상을 버렸다는 뜻이니, 에릭 번은 이 말을 ‘각본(脚本, script)을 버렸다’라는 말로 이해하지 않을까 한다.



‘나[我]’를 장사지내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 즉 자기의 각본을 인식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단계가 바로 ‘자각(自覺)’이다.



그 다음 단계는 그 각본을 버리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발(自發)’이다. 그러한 마음 작용을 거쳐서 자신의 각본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결정을 하는 것을 두고 ‘버렸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의 아상을 버리고 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데, 장자는 그러한 단계에 이른 자신의 마음을 ‘허주(虛舟)’에 비유하였다. ‘빈 배’라는 뜻이다. 배를 타고 안개가 자욱한 호수 위를 조심스럽게 가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배와 부딪히면, 대부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삿대질에 욕을 섞어서, 배를 그렇게 함부로 모느니 조심성이 없느니 하면서 고성으로 소리 지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참을 흥분하다가 상대방 배가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라는 것을 알고 나면 제풀에 머쓱해져서 조용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 즉 상대방과 거슬릴 일이 없어지는 상태가 바로 친밀(親密)의 단계이다.



그러니 친밀이란 지극히 어려운 경지임에 틀림이 없다. 유가(儒家)의 ‘인(仁)’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불가(佛家)의 ‘자비(慈悲)’가 기본이 되어야 하며 기독교의 ‘박애(博愛)’로 뿌리를 삼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지선(至善)’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영역이 다다르기 힘든 영역이듯, 완벽한 친밀과 온전한 자율성은 장자의 ‘빈 배’처럼 이루기 어렵다. 다만 추구해 나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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