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내가 느끼는 즐거운 마음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내가 즐겁다면 그게 행복이다. 남의 행복을 따라 한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오월은 나에게 ‘다르게’ 살기를 실천하는 특별한 달이다. 바쁜 일상에서의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쓰지 신이치 교수의 “Slow is Beautiful”에서 뷰티풀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마음챙김과 걷기의 새로운 습관을 구조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지금-여기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실제가 되며 A자아의 균형 잡힌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듯 마음챙김은 온전히 나를 깨어 있게 하고, 나의 삶을 일깨워 주는 기회가 된 듯하며 인간적으로 성숙해 가고 있는 일상의 새로운 기쁨이다. 나는 어떤 걸음을 하고 있는지 나의 몸의 무게중심은 어떻게 치우치고 있는지의 발의 감각과 숨 쉬고 있는 몸 전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몸의 감각이 한쪽에서만 일어나는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지 친절하게 주의를 가지는 것이다. 마치 이 느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처럼 정성스레 나의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주말 6시에 일어나 남편과 김해 장유에 있는 굴암산에 도착했다. 5월의 마지막 주라 이른 아침인데도 시간이 많이 흘러간 느낌이다. 수년 전에 등산해 보고 오늘 다시 도전해 보는 산이다. 나는 나의 몸에 집중하면서 걸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등산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집중보다는 오만가지의 생각으로 과거와 미래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였다. 나의 생각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지나가거나 숲속에 나뭇가지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처럼 내 안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숲속에 있는데 내 생각은 과거와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헤매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마음챙김하면서 그러한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부드럽게 수용하는 태도를 가진다.
산의 중턱쯤 걸어 올라갔을 때 떠오르던 나의 생각들은 점차 작아지고 없어지면서 어느새 현재에 나의 호흡과 감각을 느끼며 걷고 있었다. 그때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며 들숨 날숨과 함께 배에 집중을 하며 몸의 감각을 알아차림 할 수 있었다. 나는 순간순간 숨을 의식하며 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허가(permission)를 한다. 호흡과 감각에 가벼워짐을 느끼며 숨 쉬는 나에게 주의를 기울여 볼 수 있었다. 땅 아래의 작은 풀들의 흔들림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발견하였다. 계곡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는 우렁차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기쁨이 넘쳐났다, 흔들리는 나뭇잎들끼리의 부딪히는 소리는 편안한 마음이 동화되어 전해진다. 온전히 나는 여기에 존재함을 경험하였다. 문득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어있는 것은 딱딱하다는 말이 스치면서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였다. 그러면서 영화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영화 <내사랑>은 실제 캐나다 출신 나이브 화가(1903-1970)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루는 영화이다. 그녀는 심한 관절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며 자기성찰과 스스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 느낀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망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게 한다. 주인공 모드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사랑받았어요.”, “그림은 기억에 있는 것을, 그림으로 만들어 내는 거죠”,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모드 루이스는 자신의 상처를 그림으로 소소한 일상의 기쁨으로 덮으며 살았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열등이나 우월이라는 비현실적인 자아의식을 벗어 버리고 놀랄 만큼 자율적인 모습으로 존재하였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살면서 자기성찰과 자신이 괜찮은 사람(I’m O.K.)이라는 믿음은 교류분석의 세 가지의 철학적 가치와 긍정적인 인생태도를 반영하는 승자의 모습이다.
요즈음 모드 루이스처럼 내 인생의 액자를 새롭게 담아내고 있는 나를 새롭게 사랑하기로 했다. A자아의 전원을 오늘도 켜면서 자기관찰의 내면화에 중점을 두고 천천히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2020년 우리의 봄날은 찬란한 벚꽃잎이 나풀거리는 거리를 그저 먼발치에서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 답답한 시간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좋다. 그 시간대에서 나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고, 그 변화를 선택할 수 있으며, 내가 선택한 변화는 나를 더없이 찬란한 새로운 봄날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 새로운 봄날에 사라져간 이웃들에 대한 애도의 소리가 우리의 사이버 공간에 가득하길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