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선
충남당진(서부)지부장

요즘 내게는 흥미롭게도 문자에 대해 TA측면에서의 PAC 형태와 의사교류소통방식에 대해 놀라운 경험을 하고 거기에 머물러 ‘언어에서 느껴지는 PAC 연구를 하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나에게는 늦둥이 고2 아들이 있다. 늦둥이 아들과 소통을 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어쩌다 궁금한 일이 있어서 말을 시켜보고 싶어도, 밥을 먹으라고 불러도 혹은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불러도 대답이 없고, 닫힌 문을 핑계로 어쩌면 슬쩍 못들은 척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가 원하는 소통의 형태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자로 “아들~~~” 하면서 말을 걸어주면 생각보다 아주 빠른 답이 돌아온다. 어떨 때는 문자로 밥 먹으러 나오라고 하면 더 빨리 식탁으로 오는 경우도 생긴다. 워낙 아이들이 폰을 손에 들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 아들만 이런 소통방식을 선택하는지 자녀교육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직장에서 나누다 보면 공감하는 엄마들이 꽤 있다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요즘 아이들의 소통방식은 문자가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들과 소통할 때 문자에 거의 A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주로 “밥 먹자.”, “밥 언제 먹을래 ”, “지금 뭐 하고 있는데 ”, “오늘 일정은 뭐야 ” 등등의 A적 언어이다. 그런데 그 속에는 “제발 얼른 나와서 밥 좀 먹자.” 혹은 “공부는 다 한 거지 ” 등등의 이면교류가 살짝 숨어 있다. 그런데 아들 또한 “왜 ”, “뭘 ”, “이따가”, “ㅇㅇ”, “ㅋㅋ” 등 단답형의 알 수 없는 형태의 답문을 보내기 일쑤다. 아마 여기에도 “묻지마”, “귀찮아” 등등의 이면교류가 숨어 있을 것이다. 물론 본인이 요구할 일들이 생기면 예를 들어 “용돈을 달라”, “오늘 학원은 몇 시부터 바뀌어 진행된다.”, “황금이(우리 집 강아지) 저녁밥은 주고 나간다.” 등등 자신이 필요하거나 공적으로 알아야 하는 메시지는 가족 문자방에 어김없이 남기기는 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소통이 된다’라고 생각하며 산다.
최근에 직장 홈페이지에 상사의 갑질과 성추행 등에 대한 익명의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는 사건과 정황은 없고 분노, 화(-CP)로 가득 찬 글이었다. 그 글에 대한 댓글로 뜨거운 공방전이 펼쳐졌고, ‘어떻게 전개될까 ’ 나도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분명 성희롱고충상담창구 사이트가 옆에 있는데도 자유토론방에 의견을 올렸다. 아마도 내가 누구인 것은 밝히고 싶지 않고, 혹시 밝혀져도 명쾌하게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댓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반박하는 글의 대부분은 강력한 CP “면접시험 볼 때 민소매 입고 짧은 치마 입고 왔었냐 ”, “팀에 진행되는 행사 있을 때 아침에서야 연가 낸다고 하면 그것은 옳고, 싫은 소리 하면 갑질이냐 ”, “니 딸이라고 생각을 해봐라” 등등의 이야기와 강력한 NP 언어로 “안되었다”, “이해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 등의 언어로 표현된 글이 있다. 또 “이런 일은 상담고충방에 올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고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등의 A적인 정보제공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댓글에서 나는 사실 진정한 AC적 언어표현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어떤 역할을 수행하면서 문서상의 오류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메신저로 소통을 하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주눅들은 AC의 찐한 감정을 느끼게 된 사건이다.
왜 그런 감정을 나는 느꼈을까
실제로 문서를 재수정하는 가운데 내가 어떤 오류를 범하게 되었고, 재차 삼차 수정하는 과정 중에 아마도 엄청 내가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가이드라인을 주는 메시지 글에 A적으로 특별한 비난도 또 질책도 없이 안내를 잘 해주었지만 설명 끝에 마지막에 적힌 “ㅠㅠ” 라는 이모티콘 같은 줄임말에서 나는 정말로 한순간 찐한 AC적 감정을 느꼈다. 그 “ㅠㅠ”속에 나 스스로 ‘내가 이렇게 형편없다니.’, ‘내가 참 촘촘하지 못하구나.’, ‘나를 무시하면 어쩌지 ’, ‘정말 책임자로서 창피하다.’, ‘내가 정말 답답하겠네.’ 등등의 자괴감마저 들 정도로 나는 한동안 우울하고 자존감이 하락하는 느낌을 받으며 참 많이 씁쓸했다. 어쩜 ‘내 자신의 콤플렉스가 이렇게 작용 되었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또 그 문자, 단순한 인터넷 축약어의 뜻이 슬픔이나 울음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해석했기에 더 신경을 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내가 답답했으면 ’ 하는 생각을 하면서 미안함이 제대로 컸다.
내가 교류분석전문가로서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문자로 소통을 할 때도 우리 TA인은 세심하게 표현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과 또 문자로 받은 상처가 있다면 그 또한 ‘치유를 받아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댓글로 상처받고 스스로 생명을 놓는 선택적 죽음을 택하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문자나 메시지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SNS로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이 지속될 거라면, 이제 우리 학회에서도 이 부분에 더욱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소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고등학교시절에 아버지를 마음 아프게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내 책상 앞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내 딸 희선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빌 뿐 - 아빠마음 - ”이라는 글이다. 그날 이후에 난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대들거나 반항을 한 적이 없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죄송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하게 느낄 수 있어서 …….
말의 힘도 크지만 글자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힘들 때마다 꺼내서 보는 아버지의 힘찬 메시지처럼 글의 힘이 크다면 기왕이면 힘이 되고 에너지가 되는 글을 남기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까 촉촉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에 짧은 단상에 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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