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소식지
산책하러 왔습니다
TA人 회원 칼럼 ( 2021년 1월호 )

정부영
강원강릉(명주)지부
더불어숲 지역아동센터장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을 매일 만나던 일상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아득해지고, 긴급돌봄을 신청한 아이들 몇 명만 만날 수 있던 어느날, 나에게도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복되는 하루가 무미건조하고 활력을 잃어갈 때쯤, 강원명주지부장이 올린 교류분석상담사 과정 웹 포스터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뭐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아니면 답답한 마음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산책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무작정 연락을 하고 상담사 과정에 나섰다.

상담사 과정이 시작하던 첫날, 서로를 소개하며 참여한 소감을 나누면서, 나는 첫 마디에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동네 산책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상담사 자격증이나, 새로운 이론과 상담기술 등의 지식이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정말 산책하듯, 이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긴 호흡을 가다듬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새로운 이론과 수업 과정은 부담스럽지 않았고, 나의 인생태도와 자아상태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출생과 성장 과정, 가정환경, 청년기와 결혼하기 전까지, 쉽지 않은 시기를 무수히 많이 보내왔고 그만큼 많은 우여곡절의 사연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뒤로 밀려나는 듯한 인생의 파도 앞에 늘 견디고 헤쳐나가려고 바둥거리며 살아왔기에, 나 자신을 위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그리고 부성(父性)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해서, 결혼하고도 세 명의 아들을 양육할 때도 홀로 고민하고 공부하고 애쓰며 살아왔다. 무엇 하나도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같이 느껴졌고,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I’m not OK.'일 때도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I’m OK.'처럼 보이려고 애썼고, 상대방이 'You’re not OK.'이어도 나는 늘 한결같이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그 결과는 제 살을 깎아 먹는 식의 심리적 고통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힘들고 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관계 중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강한 관계는 남아있지 않다. 그런 시절이 삼십대 후반까지 이어졌으니,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사실 그동안 나를 돌아보는 성찰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업이 사회복지사이고 올해까지 16년을 이 업으로 살아오며, 나름 이런저런 심리적인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신앙을 통해서도 늘 자가 점검하려는 노력도 동반되었기에, 어느 정도 내 자신의 상태를 늘 점검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TA(교류분석) 상담사 과정을 통해 놓치고 있는 부분들과 알지 못했던 나 자신만의 교류패턴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동안 자기 검열식의 자아 성찰이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자기합리화 방식의 잣대를 적용해서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자신에게는 합리적인 기준이지만, 타인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교묘한 방식의 교류패턴이었던 것이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업무에서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는 방식의 부모자아가 작용하고,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러한 내 자아 상태와 인생태도의 이면을 성찰할 수 있게 된 점이 불편하거나 힘들기보다 이 과정의 산책을 정말 잘 시작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아직은 상담사 기초과정의 첫 단추를 끼기 시작했지만, 앞으로의 여정도 기대가 되고 있다. 이 과정을 마치고 산책을 나선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누구보다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면교류 없이 참된 교류를 하며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한 뼘 더 성장하고 성숙하는 TA 人이 되고 싶다 ■

 
  등록일자 :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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