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소식지
자율성을 향한 나의 각본 탈옥기
TA人 전문가 칼럼 ( 2021년 2월호 )

이수경
서울마포(공덕)지부
KTACA 상담영역 수련감독


제 삶은 교류분석을 만난 이후로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독한 ‘I’m Not OK’로 살아왔던 터라 저의 ‘기쁘게 하라’는 드라이버와 ‘존재하지 마라’, ‘중요한 사람이 되지 마라’는 금지명령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제 자신이 가엾고 불쌍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 후 긴 시간에 걸친 재양육의 과정이 이어지고 재결정을 했다가도 임패스에 빠져 각본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교류분석 수련감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상담자의 각본과 허가에 대해 제가 수련을 시작한 초창기에 써두었던 글이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글이 교류분석을 처음 만나고 수련을 시작했을 당시 제가 느꼈던 수많은 복합적 감정들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거울이 아닌 빛나는 한 존재로서 살아가도 됨을 허가 받았습니다.

상담사라는 큰 권위자가 부모와 같은 권위로 저를 그 족쇄로부터 풀어주셨죠.

인생각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이라는 사실이 풀려나고 보니 조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꾸만 그 감옥에 들어가려는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바깥세상은 무섭고, 아름다운 색채 또한 부담스럽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있었던 그 침침하고 좁고 축축한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다시 원래의 감옥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나를 풀어준 권위자를 바라봅니다.

그분이 계신 곳은 밝고 따뜻하고 환하고 찬란합니다.

활짝 팔 벌려 나를 맞이하는 그 모습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괜찮아. 이젠 그곳에 가지 않아도 돼. 이곳에서 실컷 놀아.

너의 놀이터고 다 네가 가져도 되는 것들이야. 어떤 것을 해도 괜찮아.

너는 어떤 짓을 해도 사랑스러운 아이야. 너라는 사람은 참 밝게 빛나는 존재야.”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점점 끌려가는 중입니다.

40년이 넘도록 감금되어 있던 내면의 아이가 차츰 세상의 빛을 향해 나오고 있습니다.

너무 밝아서 눈이 멀 만큼 세상이 내뿜는 햇살은 충격에 가깝습니다.

태어나서 이만큼 따뜻한 스트로크를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밝음과 따뜻함이 낯설고 불안하고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걸 알게 된 이상 놓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워집니다. 이 따뜻함을 잃을까 봐.

다시 그 음침한 곳으로 돌아가야 할까 봐.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이건 아마 나를 시험하는 함정일 거야. 이런 곳이 나와 어울릴 리가 없잖아.

어차피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라면 하루라도 빨리 옛날로 돌아가야 해.

이곳에 있다가 어느 순간 쫓겨나면 나는 옛날 그 장소에 적응하지 못할 거야.

지금 이 순간에 빠져서 익숙해지면 곤란해. 예전의 기억을 잃어버리면 안 돼.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 나를 망쳐서는 안 돼.'

 

그러나 그 결연한 다짐은 권위자의 따뜻한 허가 앞에서 곧장 무너지고 맙니다.

그분은 한결같은 태도로 모든 것을 다 풀어줍니다.

이 따뜻함을 누리는 데 어떤 자격도 보상도 필요 없음을 말해줍니다.

믿을 수도 없고 믿겨지지도 않지만 강력하게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을 만큼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권위자의 부름에 이끌려 어딘가로 나가는 중입니다.

인생각본이라는 얽히고 설킨 미로에서 출구를 향해 나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전체 미로를 나는 바라볼 수도 없고 탈출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것을 볼 줄 아는 누군가가 내가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어떤 길로 나와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즘 나의 낡은 각본을 뜯어 고치는 중입니다.

현실에 맞는 로맨스물이어도 좋고, 코믹이어도 좋고, 욕 나오는 막장드라마라도 좋습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익숙한 장르를 벗어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은 쪽박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새로 쓰는 인생각본으로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블록버스터급 대박을 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의 결단과 의지로 한 번 맞짱을 떠보려 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내 인생의 천만 감독이니까요. ^^

- 2016. 2. 19 나의 블로그 글에서 발췌

 

각본에서 빠져나온 이후 제 삶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청량감과 자유로움으로 가득합니다. 삶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샘솟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사실은 샘솟는 그 마음이 더 이상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올바른 행동과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류분석을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각본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세상 밖으로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각본을 벗어나는 긴 시간동안 그 어둡고 막막했던 미로를 잘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손을 그토록 오래 잡아준 분들은 바로 서울마포(공덕)지부의 이정상 슈퍼바이저와 동료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손길이 참으로 따뜻하고 든든했기에 어둡고 막막한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두려움을 극복해내며 끝끝내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 각본 탈옥을 도와주신 저희 지부 가족들과 저와 인연이 있는 학회원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으로 앞으로는 훨씬 밝고 뽀송뽀송한 세상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려 합니다 ■

 
  등록일자 :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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