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경기부천(상동)지부 회원

나는 작년 초에 대학원 동기 선생님의 권유로 교류분석 상담사 단계교육을 통해서 TA에 입문하게 되었다. 1~5단계까지 교육을 진행하면서 매시간 개인 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계속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내 나름대로는 상담을 공부하면서 대학원에서 개인 분석도 받아봤고, 또한 과거의 상처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해결된 듯 보였지만 아직도 내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직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는 힘들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는 훨씬 많이 변하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과거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좋은 부모님에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 살면서 늘 내 마음속에 이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14살 때 교회 개척을 하셔서 올해로 30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힘든 목회를 이어가신다. 그 30년의 세월 동안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2~3년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교회를 이전했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지적장애 남동생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목회에 바쁘고 아픈 동생을 챙기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늘 우선순위에서 벗어났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 개인 분석을 받으면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 과거의 상처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몹시 힘들었다. 과거를 떠올려 보면 그 당시 나는 그저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고 돌봄 받고 싶은 어린아이였는데, 그런 애정 욕구에 대한 좌절과 결핍감들은 나를 일찍 철들게 했고, 내면의 감정들을 많이 억압하며 살게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도,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늘 우울했고,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아 외로웠다. 그러면서 늘 마음속에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감이 많았다. 이런 감정들이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항상 불편하게 했고,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용서했다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맑은 물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툭 건드리면 내 속에서 시커먼 흙탕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도 너무 지치고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너는 언제까지 그렇게 과거에 사로잡혀서 질질 짤 거니 ’, ‘이제 그만할 수 없니 ’
그런 마음이 많다 보니 우울하고 자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단계교육을 하면서 나의 그런 생각이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나를 진심으로 수용하고 공감해 줄 수 있어야 타인도 수용하고 공감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게 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TA 단계교육을 하면서 동기 선생님과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둘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이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 얼마나 더 울어야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까요 이것이 항상 우리 둘의 대화에 화두였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차를 타고 가다가 내 속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내 부모님을 바꿀 수가 없다면, 부모님을 대신해서 내 자신이 ‘심리적인 부모’가 되어 내면의 ‘어린 아이’를 ‘재양육’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 생각을 동기 선생님에게 제안했다. ‘우리는 아직도 심리적으로 어린아이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우리 내면의 아이를 스스로 재양육해 보는 건 어떨까요 ’ 과거의 일들이 아직도 우리 내면의 아이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한다면 우리 내면의 또 다른 내가 ‘부모’ 혹은 ‘상담자’가 되어 아직도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그 아이를 돌보고 재양육하는 건 어떨까요 내 제안을 듣고서 동기 선생님도 깊이 공감했고, 우리 둘은 서로를 보고 웃을 수 있었다. 그 웃음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자신에게 ‘그만 좀 울어 지겹다’라고 자책하고 다그쳤다면 이제는 우리 내면의 깊은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마음에 어린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허가(허용)해 주고 싶었다. ‘~하면 안 돼’가 아니라 ‘~해도 돼’라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서두르지 않아도 돼’라고 말이다.
사실 그리 큰 기대감 없이 시작한 단계교육이었는데, 지금은 전문가 과정까지 하게 되었다. TA는 단순한 하나의 상담이론을 배운 것에서만 그치지 않았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말 의미 있고,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고 깨닫게 해주었다. 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 맺는 방식이 눈에 띄게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TA에서는 인간을 모두 OK의 존재로 본다. ‘l am OK’, ‘you are OK’ 단계교육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 지금도 가장 남아있는 부분이다. 왜 그렇게 그 말이 나에게 의미 있고 좋았을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과거의 나는 나 자신도 타인도 ‘not OK’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l am OK’, ‘you are OK’(자타긍정)로 가기 위한 그 과정 어디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내가 내 부모로부터 영향받은 부모명령이나 각본신념들은 얼마든지 내가 재결정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라든지 “내 인생은 실패야” 이런 식의 패턴을 고수하면 실제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끈적끈적한 부정적 기억강화들은 우리를 다시금 우리의 ‘각본신념’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과거의 기억을 정당화(합리화)하여 우리로 하여금 불행한 기억을 반복적으로 곱씹으면서 기존의 패자각본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한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부모님이 어떠했는지보다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허가해주고 재양육하면서, 내면의 어린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버텨주고 기다려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not OK’ 각본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시고, 항상 나에게 좋은 대상으로 버텨주시고, 반드시 ‘~해야 돼’라는 당위적 사고가 많은 나에게 ‘~해도 괜찮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네가 노력한 과정 자체를 인정해 줘’라면서 무한 긍정스트로크를 주신 부천(상동)지부 팽혜숙 소장님께 감사하다. TA 이론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고, TA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 자체도 즐겁지만, 그 변화와 성장의 과정에서 함께 해준 팽 소장님과 동기 선생님들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를 통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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