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숙
김해내외지부

나는 가정폭력 쉼터라는 곳에 종사자로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쉬면서 가족 또는 자립에 대한 생각을 하는 곳.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열심히 살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곳이지만 이곳에 왔다는 것은 아픔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이들을 마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두려움이 여전히 내겐 있다.
전문적으로 상담학 또는 심리학을 배운 적이 없는 내가 담당자가 되어 보조를 한다는 것이 많이 부담스러울 때 교류분석은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질문을 던지고 공감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으며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류분석을 배운다고 했을 때는 막연하게 언어학적인 부분만을 생각했다. 상담학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뭐지 무엇을 배우는 것이지 라는 의문이 많았다. 사전적인 뜻은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함, 이라고 하니 감정의 교류인 것으로 해석을 하면서 입문을 하게 되었다.
너무 어려웠다. 중학교 시절 처음 영어라는 것을 배울 때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했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 영어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첫 수업을 마쳤을 때 건망증에 걸린 사람마냥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배웠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교재를 살펴보았지만 그럴수록 엉킨 실타래가 풀리기 보다는 더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나 교류분석 괜히 한다고 한거 아냐’라는 수업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수업을 기다렸다.
수업이 진행이 되어감에 따라 배움의 깊이와 더불어 나의 생각의 깊이도 깊어져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려움이 더해갔다. 시작은 호기로왔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경청하고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나의 모습이 참 못나보였다. 하지만 교수님이 수업 진행을 하실 때마다 힘을 주셨고 괜찮다고 하셨다. 정답을 찾아야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고 알려주셨다.
나의 생각이 깨어졌다. 이제껏 정답만을 추구하고 시험을 쳐도 백점을 맞아야만 하며,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된다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사는 것이 완벽한 삶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괜찮습니다.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더 반복을 하면은 되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매번 해주셨던 말씀이 백점을 맞기만 바라던 어린 아이같은 나에게 힘이 되었기에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서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을 했다.
작년의 기억과 올해의 기억이 다르기는 하지만 CP, A, FC 세 가지 자아가 서로 공존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힘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큰 것은 어릴 적 무의식속의 기억들이 현재를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과 이 모든 것를 알게 되는 알아차림을 하였을 때 더 큰 힘을 발휘를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 기뻤다.
교류분석 상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머릿속은 백지인 듯 배운 것이 없는 것처럼 하얗기만 하다. 하지만 할 수 있을꺼라 생각한다.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있었기에 즐거웠고 교수님의 가르침은 상냥하였으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쉽게 가르쳐 주셨기에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오늘 하루도 여러 가지 분석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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