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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분석을 만난 후 10억 벌다
TA人 회원 칼럼 ( 2021년 7월호 )

이송
경기수원(권선)지부


뜨락의 국장님께서 교류분석상담사과정을 마치고 전문가과정에 임하며 나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 왔을 때, 2018년 교류분석을 만난 후의 삶과 지금의 삶이 너무도 달라 A4 한 장으로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의 자아상,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나는 그야말로 재양육 되었다.

그중에서 다소 제목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가 겪은 변화 중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상담하는 사람이 물질적인 것을 말할 때는 다소 가벼워 보이고 심지어 인생의 정말 중요한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목의 ‘10은 단순한 재물 10억이 아닌 나의 삶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이다.

교류분석을 통해 학자금 대출도 갚지 못하던 내가 어떻게 자산 10억을 갖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공무원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딸 둘인 집에 맏딸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사랑이 많으신 부모님 사이에서 정서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되고 행복하게 성장했다. 우리 부모님께 늘 들었던 말은, ‘세상에 돈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은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없는 살림에도 빚을 내어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다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그 빚이 쌓이고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기다 아버지께서 친구 빚보증을 서면서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고 내 나이 20세 때, 그나마 살고 있던 전셋집 아파트를 팔고 월세방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나는 부모님께 너는 우리 집의 기둥이다. 네가 무너지면 우리 집은 무너진다.’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늘 듣고 성장했으며 나 스스로 가족을 책임지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인생각본을 써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몰랐지만) 가슴은 늘 답답했고 혼자 있을 때 깊을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나는 27세에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 피아노를 전공하는 동생을 내 월급으로 가르치고 친정에만 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주말마다 시댁에 가서 하루 4시간 잠을 자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다. 동생을 가르쳐야 했고 친정 빚을 갚아야 했으며, 시부모님 부양, 남편에게 순종, 아이 양육까지. 완벽한 여자가 되기 위해 과잉적응하며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살았다. 왜냐하면 나는 집안의 기둥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의 시간의 구조화는 활동으로 가득 차 밤이 되면 어김없이 허무함과 공허감이 밀려왔다. ‘내 나이 34세에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나는 학자금대출 하나 제대로 갚지도 못하고 살고 있구나.’

그 후 2018, 내 직업에 대한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왜냐하면 나는 우리 집의 기둥이니까) 지인의 소개로 교류분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단계 교육부터 5단계 교육을 마칠 때까지 매주 눈물을 흘렸다. 나에 대한 자각이 일어날수록 나 자신에게 미안했고 이렇게 사는 내 삶의 최후는 결국 패자각본을 쓰며 막을 내린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나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 후, 나에게 허가를 주었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해도 괜찮으며 나를 위해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허가를 준 후 처음에는 부모님의 가슴을 매우 아프게 하며 끝없는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다 전문가과정에 입문하며 교육분석을 받고, 부모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동생의 능력을 내가 디스카운트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며 동생 스스로 동생의 삶을 책임지도록 했다. 시부모님께도 늘 지나친 AC(순응하는 어린이자아)로 반응했던 내가 A(어른)자아를 갱신하여 필요한 것을 요청도 하고 나의 생각을 말씀 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오롯이 내가 번 돈을 저축할 수 있었으며 남편 역시 이런 내 모습을 신뢰했고 함께 재정계획을 세워 결국 제주도에 내 이름의 집과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 처음 내 집과 사무실이 생긴 날, 내 모습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뜨락 소장님께는 꼭 알리고 싶었다.

나는 매매계약서를 찍어 소장님께 보냈다. 10년째 학자금대출도 갚지 못하고, 부모님 빚을 갚고 동생을 가르치느라 생활비가 없어서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 다녔던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소장님은 한 문장의 답을 주셨다.

이송 선생님! 승리하셨군요. 눈물이 납니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패자각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던 내가 끊임없이 재결단하고 허가를 주었다가도 다시 게임에 들어가 패자각본을 쓰고 다시 자각하여 빠져나와 재결단하던 4년간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 지금도 여전히 교류분석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나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오늘을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등록일자 :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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